잠도 안 오니 옛날에 꿨던
꿈 얘기 좀 해줄게.
몇 년 전에 꿨는데,
컴컴한 좁은 복도에 서 있고
오른쪽엔 빛이 새어 나오는 사무실이
있는 꿈이었어.
첫 번째 꿈엔 잠시 동안
'여기가 어디지?'
하고 멍하니 있었는데, 복도 멀리서
어린 여자애(초등학생쯤?)가 달려왔어.
근데 그 애가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거야.
뭐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애가 내 배에 칼을 찔렀고,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어.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고.
'어휴, 별 거지같은 꿈이 다 있네'
하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또 똑같은 장소,
컴컴한 복도에 와 있었어.
'어,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그 소녀가 또 달려와서 칼빵을 맞고
잠에서 깼어.
세 번째 같은 꿈을 꿨을 땐 사무실로
도망가서 책상 아래에 숨었는데,
들켜서 칼로 눈을 찔렸고,
네 번째엔 사무실에 있는 걸
다 던졌는데도 못 이기더라.
근데 한 다섯 번쯤 되니까 기시감이
너무 느껴져서 무섭지가 않았어.
똑같은 공포게임을 계속 하는 느낌?
그래서 다섯 번째랑 여섯 번째엔
놀라지도 않고 '워워, 컴다운' 하면서
설득을 시도했는데(물론 실패)
일곱 번째엔 그냥
'에유 그냥~ 찔러라~' 하고 깼어.
여덟 번째 같은 꿈을 꿨을 땐,
여자애가 갑자기 하던 대로
죽이는 게 아니라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왜 안 도망가?"
그래서 나는
"꿈이라서 어차피 안 죽잖아?"
라고 답했는데, 그 애가 입을 찢어지게
웃으면서 말하는 거야.
"아닌데? 죽는데? 이제 두 번 남았는데?"
그러고 배를 칼로 찔림과
동시에 다시 잠에서 깼어.
글로 옮기기엔 필력이 부족한데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정말 기괴했어.
그리고 두 번 남았단 말에 찝찝해서
한참 동안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는데
또 잠에 들고 말았어.
중간에 계속 깨서 너무 졸려서...
아홉 번째 땐 꿈이 시작하자마자
찔리고 있었고, 찔려도 계속
깨어나지 않고 고통만 늘어나고
그 여자애는 계속
"한번 한번 한번 한번 한번 한번 한번 한번"
이러고 있었어.
또 기괴하게 웃으면서.
일단 꿈속에서 눈을 감았다가
뜨고 깨어났어. 나는 꿈인 걸 아는 상태로
눈을 감았다 뜨면 바로 잠에서 깨거든.
그날 밤엔 더 이상 안 잤어.
계속 '한번 한번' 하는 게 너무 불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네 뒷산이라도 달렸고,
다음 밤에 또 나오면 어떡하지
하고 덜덜 떨면서 잤는데 다행히 별일 없더라고.
기억엔 엄청 깊게 남았지만
그 뒤로 더 이상 그 애한테
칼에 찔리는 일도 없었고,
내 일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점도 없었어.
가끔씩 꿈을 꾸면 익숙한 느낌의
어둡고 좁은 복도끝에
누군가 서있는 느낌이 들때를 빼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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