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거의 판자촌 수준의 연립주택에서 살았고,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동네에서 소주병
같은 걸 주워서 팔아 용돈을 벌고,
그 돈으로 쫀드기 같은 걸 사 먹는
것이었죠.
저녁에는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 같은
만화를 보고 일찍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설날 이후였던 것 같은데,
우리가 살던 연립이 가동, 나동, 다동,
사동까지 있었거든요.
저는 나동에 살고 있었는데,
사동에 산다는 또래 아이가 갑자기 저에게
친한 척하며 다가왔습니다.
그날도 저는 소주병을 줍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저에게 접근해서
"내가 세뱃돈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
같이 오락실 갈까? 내가 다 내줄게."
라고 유혹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아이의 얼굴은 분명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알고
있던 애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쏜다니 기쁜 마음에 따라갔죠.
가는 길에 그 아이가 초콜릿도 사줬는데,
당시 고급 초콜릿이었던 크런키였어요.
그때 500원이었으니 꽤 비쌌죠.
그렇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오락기
모니터 위에 100원짜리를 줄 세워놓고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정말 제 생애 최고의 행복한 날이었어요.
그렇게 한참 재밌게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소리도 없이요.
그때 기분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얘가 어디 갔지? 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근데 얘 누구였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갑자기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졌고,
지금도 그때의 황당함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혼자 오락실에서 나와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길거리에서 엄마가 혼비백산한
채로 저를 찾고 있더라고요.
"너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저는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어... 아는 애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오락실에서 게임도 시켜줬어."
라고 하니 엄마가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응? 몰라. 근데 여기 사는 앤 데..."
하며 말끝을 흐리니 엄마가 계속
집요하게 물었고, 안 믿었어요.
저는 증거를 보여주려고 주머니에서 아까
먹었던 크런키 포장지를 꺼내려했는데,
그게 없는 거예요.
분명히 주머니에 넣어두었거든요.
당시 은박지가 귀해서 연필을 말아 피며
놀 생각으로 챙겼었는데,
없어졌어요.
그때부터 저도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저를 데리고 오락실로 가서
아줌마에게
"얘 오늘 여기 왔었나요?"
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소름 돋는 일이
벌어졌어요.
오락실 아줌마가 저를 모른다는 거예요.
분명히 저는 친구와 돈도 바꾸고,
시끄럽게 떠들며 놀아서 아줌마가 청소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눈치도 줬었거든요.
그 순간 저는 정말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기가 나비인지,
사람이 꿈을 꾸는 건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더 오싹하더라고요.
결국 그 아이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온 동네방네 애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패닉에 빠졌고,
시간은 흘러 점점 잊혀 갔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겪은 일이라 워낙 충격이 컸던
탓인지 잊는 데 꽤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2학년 때
군 입대를 하게 되었어요.
상병 때쯤이었을까요? 2군단이었는데,
군단장이 새로 취임하는 행사에 제식 행사를
위해 선출되어 가게 되었어요.
제가 키가 큰 편이라 선발되었죠.
각 부대에서 100명씩 차출되어 연병장에
몇 천 명이 모였어요.
예비군 1군 사령관도 오고, 2 군단장, 강원도
도지사까지 와서 축하할 정도로 큰
행사였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복귀하려고 모였는데...
멀리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애였어요.
평생 잊고 살았던 그 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희미한데,
그냥 강하게
‘그 애’
라고 느껴졌어요.
하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그런 느낌.
그때의 흥분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어요.
저도 모르게 미친 듯이 그쪽으로 달려갔어요.
후임들이
"상병님 어디 가십니까?"
하고, 선임들도
"저 새끼 어디 가?"
했지만 다 씹고 달려갔어요.
십 년 동안 풀지 못한 미스터리를 풀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 애 앞에 도착해서 헉헉거리며
"혹시... 저 알아요...? 저... 알죠...?"
라고 묻자, 그 애는 모른다고 했어요.
"혹시 인천 간석동에서 살지 않으세요?"
라고 묻자, 평생 충북 진천에서만
살았다고 했어요.
"단 한 번도 인천에 온 적 없으세요?"
라고 했더니, 없다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나이를 물어보니 저보다
한 살 어린 21살이었어요.
"아, 아니구나. 제가 잘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섰는데,
그 사람이 뭔가 머뭇머뭇하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냥 돌아섰어요.
부대로 복귀하려고 줄 서 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한 마디가 귓가에
콕 박혔어요.
“아, 근데 요즘 왜 이렇게 날 봤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순간 너무 섬뜩해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지만, 이미 줄이 너무 길어서
뒤통수만 보였어요.
이탈할 수도 없었기에 포기했지만,
미칠 것 같았어요.
부대에 복귀한 후에도 계속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고요.
이 일은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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