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마을인지, 그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 고향은 조용하고 평범한 곳이었지요.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도 아니었고,
특별할 것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다 알 만큼
작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얼굴 정도는
대부분 알고 지냈습니다.
꽤 큰 마트도 있었고, 영화관도 있었으며,
학교들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물들과 교회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지요.
하지만 우리 마을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은
거의 0에 가까운 범죄율이었습니다.
최악이라고 해봐야 십 대 몇 명이 낡은
건물을 망치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 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였습니다.
혹시라도 그 마을에 가게 된다면 사람들은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려면 매달 마지막 날에
방문해야 하겠지요.
저는 그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매달 마지막 날이면 같은 일을 반복했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출근할 때 늘 입을 맞추셨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날이 되면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절대 밖에 내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반항적인 십 대들까지도 애완동물과
함께 하루 종일 집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집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었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이 밖에 나갔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에 돌아올 시간을 놓칠 가능성이
컸기에, 아예 못 나가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해가 지자마자 어머니와 함께
즉시 폐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언제나 우리 집으로
오셔서 함께 밤을 보내셨지요.
저는 거실에 앉아 부모님이 세심하게 집 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아버지는 신중하게 집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을
잠그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하며 목록에 체크 표시를 하셨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부모님은 다시 한번 집안을
둘러보았고, 아버지는 또 한 번 잠금장치를
점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커튼을 쳤습니다.
그리고 벽난로를 철판으로 덮고는 숙련된
솜씨로 나사를 조이셨지요.
앞문과 뒷문에도 같은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철판들은 다시 나사를 풀어 다락방으로
옮겨졌습니다.
겨울철에는 이 과정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벽난로에 불을 지필 수도 없었기에,
담요를 여섯 겹씩 덮어도 전혀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폐쇄 절차가 끝나면 우리는 거실로 모여
거실 문까지 닫고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말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잘 수도 있었지만,
긴장한 상태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허리 때문에 거실의 소파를 침대로
남겨두었지만,
우리 모두가 극도로 긴장해 있었기에
작은 소음에도 깜짝 놀랐습니다.
가구가 삐걱거리기라도 하면 모두가 심장이
멎을 뻔했으며, 재채기라도 하면 공황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석유 등잔 두 개를 켜 두었습니다.
빛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누군가 나가야 할 때 완전히 어둠 속에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세 번째 등잔도 있었지만,
그것은 화장실을 갈 때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조차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가야 했습니다.
제가 가야 할 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동행하셨습니다.
화장실 문은 열어둬야 했고,
일을 본 후에도 물을 내려서는 안 됐습니다.
그리고 무장을 해야 했습니다.
화장실을 가는 동안,
거실에 남은 사람들은 수렵용 엽총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날만큼은 제 몸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무장한 가족들과 함께 석유 등잔의 희미한 불빛
아래 음산한 그림자가 드리운 복도를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전등을 켜면 될 텐데,
그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빛도, 소리도,
"그들"
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은 전부 금지되었습니다.
아기나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아기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은 울고 떼를 썼고,
그 소리는 너무도 위험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다른 곳보다 어린아이들의 무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던 부모가 실수로
질식시켜 버리는 사고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들은 체포되지 않았고,
조사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그 지경까지 몰아넣은 것이 무엇인지.
밤은 대부분 조용했습니다.
저는 카드놀이로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책을 읽으며 졸음을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밤도 있었습니다.
"그들"
이 우리 집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때의 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
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들"
이 우리 집을 선택했던 그 밤,
저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들은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리고,
창문을 흔들고,
굴뚝으로 기어오르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철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손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소리였지만,
곧 딸깍딸깍거리는 이상한 소음으로 변했습니다.
한 번은 노크까지 했습니다.
친절한 이웃이 두드리는 것처럼 정중했지만,
철판을 쾅하고 내려치는 무거운 소리였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노크 소리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5살 때 도망쳤습니다.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들"
이 저를 쫓아와 이곳까지 퍼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밤 문을 꼭 잠급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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