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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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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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는 전원일기에 나오는 것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동네 주민 한 분이 부업으로 구멍가게를 하셨지만,

바쁜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이 되면 가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과자라도 하나 사 먹으려면 자전거로

20분을 달려 읍내까지 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제가 열 살쯤 되던 겨울,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늘 저녁 늦게 귀가하셨고,

그날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아침 일찍 외출하셨다가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자연스레 집엔 저와 여섯 살 어린 동생

둘만 남게 되었죠.

 

때 우리가 살던 집은 마당이 크고 2층 구조의

주택이었는데,

실내 계단이 아닌 외부 계단으로 옥상에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2층은 월세를 주다가 그 당시에는 빈 상태였고,

집 안에는 쓰지 않는 작은 방 하나와 할아버지께서

각종 공구와 농기구를 보관하시던 지하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지하실에서 손가락만큼 큰 지네를

본 뒤로 지하실 근처만 가도 무서워하곤 했습니다.

 

화장실도 마당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재래식

장실이었는데,

바로 앞에 큰 감나무가 서 있어서 어린 마음에

낮에도 가기가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동네엔 가로등 하나 없어서 저녁이면

온 동네가 깜깜하고 쥐 죽은 듯이 조용했죠.

 

제 겨우 네 살인 동생과 빈 집에 남아 있으려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와 불 끄고 봤던

‘토요미스터리 극장’

의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한 번 무서운 생각이 들자 별의별 상상이 다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나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동생이 추워서 안 나가겠다고 했지만,

과자를 사주겠다고 꼬드겨 자전거 뒤에

태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20여 분을 달려 읍내로 나가 동생에게 과자를 사주고,

시간이 남아서 오락실에 가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선 오락실에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평소에 못 가던 곳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돈이 떨어질 무렵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9시가

넘었더군요.

 

동생을 재촉해 자전거에 태우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한 10분쯤 달리다 보니 멀리 불이 켜진 우리 동네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집에 가면 혼날 것 같아 더 급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러다 중간에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논길로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길은 좁고 비포장이었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두르며 페달을 밟던 제 시야에 맞은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오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어둠 속이라 상대방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쪽에서 벨을 울려서 자전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우리 동네로만 이어지는 길이라 동네

어르신인가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길가 옆

논두렁에 바짝 붙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전거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우리

옆을 지나갔습니다.

 

자전거는 어르신들이 흔히 짐을 실을 때 쓰는

큰 자전거였고,

키 작은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지만 얼굴은 어두워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자전거는 아무 대꾸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자전거가 멀어지고 나서 동생에게 빨리 자전거에

타라고 하려던 순간 입안에 쓴맛이 느껴졌습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게 씁쓸한 맛이 혀끝에 남아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마당에 들어서니 할아버지께서

옥상 계단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늦게 돌아다닌 것에 대해선 크게

혼내지 않으셨고,

씻고 밥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가족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던 중에 저는 그 논길에서

만난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엔 별다른 반응 없이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제가 쓴맛이 느껴졌다고 하자

갑자기 할머니께 밥상을 치우라고 소리치셨습니다.

 

그 후, 할아버지는 아무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고

효자손으로 저와 동생을 혼내셨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울며 맞고 있는데 마침 부모님께서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셨고,

아버지께서 몸으로 막아섰을 때에서야 할아버지의

매질이 멈췄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무섭게 노려보며 마루에 나가

꿇어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피곤했던 우리는 금세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2시쯤, 할머니께서 조용히 우리를

깨우셨습니다.

 

잠에서 깬 저와 동생을 대문 밖에 데리고 나가더니

팬티 빼고 옷을 다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이었지만 할머니께서 우리 몸 구석구석에

소금을 뿌리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 없이 약 15년이 흘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저는 그날의

이야기가 떠올라 어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때 나와 동생이 밤늦게 논길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예전에 동네에서 자살한 과수원집

아주머니일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막 결혼하셨을 때,

동네에 과수원을 운영하던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아주머니가 읍내에서 농약이나 모종 등을 팔던

상점을 운영하는 홀아비 아저씨와 바람이

났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눈이 돌아간

과수원 아저씨는 그날 아주머니를 미친 듯이 때렸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그런 소동이 일어나자

금방 낌새를 눈치챈 동네 주민들이 부랴부랴

아저씨를 말렸습니다.

 

그 틈을 타 과수원 아주머니는 맨발로 뛰쳐나가며

며칠간 소식이 끊겼는데,

일주일쯤 지나 동네에서 꽤 떨어진 농기구 창고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창고였는데

아무도 그 아주머니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하는데,

경찰에 따르면 도망친 그날 밤에

사망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과수원 아저씨는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고

남사스럽다며 집에만 있다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동네 어르신들도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던 데다가

자살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미신 때문인지 거의 아주머니 쪽

친척들만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나고 과수원은 관리가 되지 않아

나무들이 다 죽어버렸고,

과수원 집 식구가 살던 집도 발길이 끊겨 마당이

잡초로 무성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흉가처럼 보일 만큼

망가졌다고 합니다.

 

그즈음에 동네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는데,

읍내에서 장날에 한잔하시고 자전거나 걸어서

집으로 오시는 길에 제가 아주머니를 마주쳤던

그 논길에서,

과수원 집 아주머니와 비슷한 행색의

여자를 봤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겁니다.

 

처음엔 술에 취한 노인들이 헛것을 봤다고,

노망이 들었다고 하며 헛소리로 여겼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늘어나면서

해가 진 밤에는 그 논길을 혼자 다니는 것이

금기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도 직접 그 광경을

목격하진 않으셨지만,

친한 동네 친구분이 그 일을 겪고 깜짝 놀라 며칠을

집에서 앓으셨다고 하셔서,

그 길로 절대 밤에 혼자 가지 말라고,

되도록 낮에도 가지 말라고 아버님과 어머님께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별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다가,

제가 동생과 함께 그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원래 해가 지기 전에 일찍 집에 들어와 있던

저와 동생이 그 늦은 시간에 그 논길을 지나쳐

올 줄은 생각하지 못하셨던지라 그런 반응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이 자는 동안

동네 뒷산에 있는 절에 할아버지와 함께 다녀오셨고,

그곳에서 스님이 시키는 대로 소금을 우리에게

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그때 입 벌렸을 때 뭐가 쓴맛 나는 게

입에 들어왔다 했지?

나도 안 겪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너희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

할아버지 친구분이 그 일을 겪고 며칠을 끙끙

앓으셨을 때 병문안을 가셨는데,

그 친구분도 그 얘기를 하셨대.

한잔 걸치시고 날도 추워서 해가 빨리 지니까 집에

가려고 그 논길로 걸어오시다가 그 여자를

딱 마주쳤다고 해.

놀라서 입으로 숨을 헉 들이켰는데 입에서

쓴 내가 진동을 했다고 하셨어.

 

그게 꼭 농사지을 때 뿌리는 농약처럼,

가끔 맞바람에 입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쓴맛이었다고 하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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