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좋지 않아서
자주 병원에 드나들며 입원 생활을 했습니다.
1년에 거의 3분의 1 이상을 병원에서 보냈던 저에게
가끔 문병을 오는 친척들이 있었는데,
저는 유독 친할머니가 무서웠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웠습니다.
친할머니는 당시 70대 후반이셨는데,
시골에서도 욕을 가장 잘하고 드세기로는
사내대장부보다 더하다는 평판이 자자했습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더욱 그러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저를 보면 늘
“사내아이가 되어서 이렇게 약해서야 어디에 쓰겠니?
아, 네 엄마 뭐 하냐?
거 고추 달랑거리는 거 떼어버리지 않고?”
“아따, 이 녀석 언제까지 아프려고 이러냐?
응? 너희 엄마가 챙겨주는 약 먹었는데도
그따위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네 아빠도 어릴 적엔 이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비실비실 거리는지 원.”
그렇다 보니 할머니가 한마디 한마디 하실
때마다 저는 울기 일쑤였고,
친가, 외가 분들은 그런 저를 달래느라 진을 빼셨습니다.
나중에는 할머니가 오신다는 말만 들어도
어디론가 숨어서 할머니가 버스 시간에 맞춰
돌아가실 때까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부모님께 혼난 적도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어째서 입원을 했는데도 건강해지기는커녕…”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병원에 입원을 시켰음에도 점차
시름시름 앓아가는 저를 보고 의사에게
붙잡고 물어보셨고,
의사도 여러 가지 검진을 해보았지만,
신체는 정상이라 이유를 몰라 난처해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는 거의 매일마다 토하곤 했고,
산책 겸으로 걷다가 무언가에 밀친 것처럼 자주
넘어져서 나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몸도 점점 앙상해져서 아무것도 먹기 싫었고,
하루 종일 잠만 자다 보니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진심 소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병원에서 퇴원 절차를
밟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느 날 부모님이 무당을 모셔왔습니다.
그때 집에는 할머니도 계셨는데,
할머니는 무당을 보자마자
“아따, 그래. 이젠 둥둥거리는 사람까지 불러서 이 소란이냐?
내가 살다 살다 별꼴 같은 걸 다 보겠네.”
라고 윽박을 지르셨지만,
무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짙은 눈썹으로 저를
내려다보더니 집안을 휙휙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이 집에 언제부터 왔는지,
아이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등등.
어머니는 그 질문들에 대해 전부 답변을 하셨고,
모든 답변을 듣고 난 무당은 입을 열더니
충격적인 한마디를 외쳤습니다.
“이 집에 악귀가 있어!
아이가 이 집에서 태어났을 때 데려가려고 붙어버린 거야!
쯧쯧,
대체 이 집을 판 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당해도
제대로 당했어!”
“예? 그렇다면 제 아이에게 악귀가 붙었다는 건가요?”
“에잉, 너무 늦었어!
악귀가 아이의 몸에 너무 강하게 붙어버려서
떼어낼 수가 없다는 말이야!
어쩌자고 이 집을 에잉…”
저는 악귀가 붙어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갖은 의학적 방법을 동원해도 나아지지 않는
저를 보고 부모님은 비틀거리며 쓰러지셨고,
할머니는 돌아가는 무당에게 욕설을 퍼부으시며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앞으로 살아봐야 몇 달이라는 무당의 말에
매일 저녁마다 울고 계신 부모님에게 또 하나의
비극이 닥친 것은 며칠 후였습니다.
“명수야,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단다.”
그렇게 건강하시고 욕 잘하시던,
기가 드세셨던 분이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온 일가에 큰 충격을 주었고,
마을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며 소곤거렸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욕만 퍼붓던 할머니가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혼자 살아오신
할머니가 편안히 주무시는 것처럼 돌아가신 것을
발견한 것은 밭에서 아침 일하시고 집으로 안부차
방문한 큰아버지였습니다.
아무튼 장례식을 치르고 이제 다시 제가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에 온 일가가 슬퍼하고 있을 때쯤,
저는 한 꿈을 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꿈에 할머니가 무덤을 열고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방향이 우리 집 쪽이었고,
그때 가까이서 본 할머니의 얼굴은 마치 분노한
악마와도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저녁이 되면 당장이라도 도끼로
저를 쪼개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또 며칠이 지났을까요? 또다시 꿈을 꿨는데,
이번엔 소복을 입은 할머니가 도끼를 들고
어느 집 앞에 서 계셨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은 우리 집 현관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죽어서도 저를 어떻게 하려는 건가
싶어서 무서웠지만,
거실에 엄마,
아빠가 저를 돌보시느라 지쳐 주무시는 가운데
제가 누워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저는 그 순간 꿈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꿈을 꾼 후부터 제 몸이 놀랍도록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죽조차 먹지 못하던 제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죽부터 시작해 밥이며 고기까지
폭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감격한 부모님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저를 지켜주셨다고 하셨지만,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다시 부모님이 무당을 부르셨는데,
놀랍게도 무당이 말하더군요.
“너희 할머니가 악령을 죽여버렸어.
대단하신 분이야,
죽어서까지 손자를 지키려 하시다니.”
무당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무당은 마을에 한 사람뿐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와 자신이
죽거든 도끼 한 자루만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무당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할머니가
드세게 말씀하시며 돈을 주시니 그대로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가 묻힌 무덤에 몰래 찾아가
도끼를 올리고,
할머니 말씀대로 제사를 지냈다는 거죠.
“넌 정말 축복받은 아이야.
악령은 이제 사라졌으니 건강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돈은 돌려주마.”
무당이 저에게 넘겨준 것은 검은 손때가
가득 묻은 만 원짜리 76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가계에 쓰셨지만,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매번 저에게 욕을 하시던 할머니가
저를 구해줬다는 사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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