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할아버지 생신이었고,
굉장히 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일하시다가 휴가를
내고 고향인 영월로 가셨어요.
친구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서울에 살지만 자주 보지 못했던
손자들과도 놀아주실 계획이셨죠.
마침 작은아버지 내외의 휴가도 할아버지와 겹쳤고,
당시 집안에서 제일 재롱 많고 귀여움을 받던
제가 선발대로 영월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주말엔 부모님과 갓난쟁이 동생이 뒤따라
오기로 돼 있었어요.
당시 저는 한창 말 안 듣는 여섯 살짜리 아이였고,
유치원에서도 동네에서도 대장 노릇을 하며
짓궂게 뛰어놀던 아이였습니다.
또, 그때 우리 동네에서 유괴 사건이 일어나
부모님께서 외출을 삼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못 나간다는
생각에 불만이 쌓여있던 때였어요.
영월 계곡이나 동강에서 마음껏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들떠 있었습니다.
저는 물가에서 신나게 놀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친구분들과 20~30년 만에 만나
회포를 푸시느라 바쁘셨고,
작은아버지는 방 안에서 꾸벅꾸벅 조시는
게 제 마음에 들지 않았죠.
물가에서 시원하게 놀고 싶은데,
눈에 보이는 건 작은 산과 오래된 건물들 뿐이었습니다.
평소 떼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놀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는지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떼를 쓰며 물가에 가자고 졸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할아비를 용서하라는 말과 함께
작은아버지의 차로 저를 데리고 물가로
이동하셨어요.
어른들이 동강 상류에서 놀다 물이 깊어지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제 맞은편에는 우거진 나무들로 덮인 산이 있었고,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어르신들은 술을 드셨습니다.
저는 혼자 놀다가 작은아버지와도 놀았고요.
작은아버지는 평소엔 귀찮은 것을 못 참으시는
분이었지만,
그날은 한 시간 정도 의욕이 넘치셨던지
우리의 베이스캠프보다 상류 쪽 시원한 곳에 수박을
물속에 넣어 두셨어요.
그러다 또 귀찮아하시면서 저에게 수박을
가져오라고 하셨죠.
저는 순종적인 어린이라 낑낑대며 수박을
들고 오는데,
저 건너편 산에서 하얀 무언가가 가만히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작은아버지께서
"뭐 하냐!"
고 소리치시길래 그냥 수박을 가져와 같이 먹었습니다.
수박을 먹으면서 산에 있던 하얀 것에 대해
"산에 하얀 거 뭐예요?"
라고 물어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뭐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산사태 뭐 막는 뭐 그런 거 같은 거겠지"
하시며 별 관심이 없으셨고,
다른 어르신들도 대낮부터 술에 취해
정신없으셔서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수박을 먹고 잠시 그 하얀 것을 잊고 혼자 놀다가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어 텐트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놀다가 문득 하얀 것이 생각났어요.
아까 그걸 봤던 대강적인 위치에서
다시 찾기 시작했는데,
저 강 건너편 30m 정도 거리에 있는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하얀 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들었고,
멀리서도 저를 보고 있는 듯했어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강과 산 사이에
있는 돌다리 같은 곳에 멈춰 있었고,
저는 그 하얀 것과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하얀 무언가가 저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였고,
어쩐지 오라는 것 같아 무심결에 따라가고 있었죠.
그 돌다리에 쌓인 돌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물이 마치 우유처럼 하얗게 보였어요.
저는 그 물에 발을 살짝 대봤는데,
순간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
저는 수영도 못 하고 몸도 가벼워서 처음엔
얕은 물에서 돌에 긁히며 떠내려가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밀려갔고요.
저는 손을 들고 애써 버티다가 텐트 앞을
지나던 작은아버지께 발견돼 구출되었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급히 뛰어와 저를 꺼내 주셨고,
어르신들께서 놀라서 수건을 덮어주시는데,
초반에 돌에 긁힌 팔에 거친 수건이 닿아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아버지가 마데카솔을 가지러 가셨고,
저는 벌벌 떨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 강 건너편
30m 정도 거리에 있던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그 하얀 무언가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술 취하신 어르신들께 그 하얀 것 때문에
물에 빠졌다고 말씀드렸지만,
다들 유령이니 귀신이니 하며 웃고 넘기셨죠.
저와 어르신들은 하얀 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긴 했지만,
무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한 어르신이 119에 신고하셨고,
저는 구급차에 타고 병원에 가게 됐습니다.
그 이후 저는 물에 대한 기피증이 생겨
수영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그냥 어릴 적에 죽을 뻔하고 하얀
유령을 본 것 같다며 웃어넘겼는데,
장산범 이야기를 보고 나서
'아, 그게 장산범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봅니다.
제가 본 장산범이 맞다면,
그것은 하얗고,
예쁘고 멋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앞발을 마치 손처럼 사용했고요.
나무에 올라가 있을 때는 가지를 잡고 있었고,
땅에서는 그냥 네 발로 기어 다녔는지,
아니면 어떤 자세로 움직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약간 침팬지처럼 이족보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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