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가위에 자주 눌렸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룻밤에도 몇 번씩
가위에 눌려서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물론 무서워서 그렇기도 했고요.
생각해 보세요,
가위눌린 뒤 겨우 깨어나면 또다시 가위...
그리고 또 가위...
그렇게 반복되다 보니 아침이 오기까지
정말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너무 자주 눌리다 보니까 깨는 방법도
저절로 터득하게 됐어요.
가위를 눌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위에 눌리면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죠.
그때 다급해지고,
뭔가가 다가오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어 하게 되죠.
저 같은 경우는 자다가 가위에 눌린 걸 인식하면
가만히 있다가, 엄지발가락에 힘을 모아요.
그러면 그 사이에 시시각각 두려운 무언가가
다가오는 기분이 드는데,
어느 정도 느낌이 오면 팍!
하고 발가락을 움직이면 가위에서 깨어났어요.
실패하면 두 번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서 저는 가위에 너무 자주 눌리다 보니
나름대로 적응하게 됐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2005년 여름,
저는 부산 S전기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직원 수도 많았고,
출근도 빨랐어요.
저는 김해에서 출퇴근했는데,
회사 버스를 6시 25분에 타면 회사에
7시 20분쯤 도착했죠.
근무는 8시부터였으니까 시간이 남았어요.
보통은 그 시간에 아침밥을 먹거나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날도 회사에 도착해서 평소처럼 자려고
탈의실로 갔는데,
그날따라 자려는 사람이 많아서 탈의실에
누울 자리가 없는 겁니다.
그럴 때 제가 주로 이용하는 곳이
탈의실 옆 샤워장이었는데,
거기에 제가 전용으로 쓰는 베개 같은 것도 있었어요.
누가 갖다 놓은 건지 모르는,
공기 들어간 비닐팩이었죠.
그날도 역시 그걸 베고 잠을 자려고 했는데,
가위에 눌렸습니다!
처음이었어요,
회사에서 가위에 눌리는 게.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시커먼 형체가 제 위에 올라타서는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어요.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엄지발가락에 힘을 모았어요.
어느 정도 힘이 모였다 싶을 때 팍!
하고 가위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어라, 이거 봐라....?
갑자기
“우와 아아아 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어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식은땀이 흐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탈의실에 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샤워실
창문으로 쳐다보며 난리가 났죠.
저는 당장 뛰쳐나왔고,
이후로 퇴사할 때까지 절대 샤워실은 물론
탈의실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도 안 잤어요.
그냥 현장에 있는 미니 간이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목소리가 너무나 뚜렷했습니다.
아마 30대 중반 정도의 목소리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 제가 피곤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었거든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그때 이후로 저는 귀신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는
분명히 우리 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고
가끔씩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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