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93년생 남자입니다.
이 이야기를 남에게 이렇게 담담하게 할 만큼
시간이 좀 흘렀네요.
먼저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거짓"
이라 생각하실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저는 귀신이나 외계인 같은 비현실적인 걸
누구보다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일을 겪고도 여전히 완전히 믿지 못할 정도로요.
그런데 그런 내가,
나조차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좀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이 일이 일어났을 당시 난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이었어.
그냥 평범한 남학생이었지.
우리 엄마는 교직에 계셔서 동료 교사
아주머니들이랑 되게 친하셨어.
그래서 방학이 되면 동료 교사분들이랑
부부동반으로 자주 여행을 가곤 하셨고,
자연스럽게 그분들 자녀들이랑도 친해지게 됐어.
그렇게 부모님들이 여행 가실 때면,
우리도 한 집에 모여서 며칠씩 같이
지내곤 했지.
그때도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부모님들은
여행을 가셨고,
우리도 그 아주머니 집에서 3일 동안 머물게 됐어.
나랑 내 동생도 같이 있었고.
사건은 그 둘째 날 밤에 터졌어.
당시 난 인터넷에 있는 축구 게임에
푹 빠져 있었어.
오전에 놀다가 그 집에 들어가니 우리 중
제일 나이 많은 누나가
“얘들아, 오늘 저녁 밖에서 먹자!”
라고 하는 거야.
근데 난 피곤하기도 하고 게임하고 싶어서
“난 집에 있을게, 너희끼리 다녀와”
라고 했어.
그 집주인 아들인 ㅅㅁ라는 동생도
“나도 집에서 TV 보고 라면이나 먹을래”
하길래 우리 둘만 집에 남았지.
그렇게 난 컴퓨터 방에서 정말 정신
놓고 게임에 빠져 있었고,
ㅅㅁ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그 동생이
“형, 나 친구 좀 만나고 올게”
라고 하는 거야.
나도 별생각 없이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냥
“그래, 다녀와”
하고 대답했어.
시간이 좀 지나니까 목이 타더라고.
그래서 그 동생이 나갔다는 걸 깜빡하고
“ㅅㅁ야, 형이 골 먹힐 것 같으니까
물 한 컵만 갖다 줘”
라고 했어.
근데 물을 안 가져오길래 다시
“ㅅㅁ야!”
하고 불렀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런데 곧 누군가 테이블 옆에 물을 한 컵
놓아주더라고.
컴퓨터랑 방문이 마주 보고 있어서 누가
들어오는지는 못 봤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얼마나 무서운 상황에
처했는지 자각하지 못한 거지.
“오 땡큐!”
하고는 게임을 계속했어.
얼마쯤 지났을까,
두통이 생겨서 컴퓨터를 끄고 물컵을
들고 거실로 나왔어.
배도 고프고...
‘어? 아, 맞다. 다들 밥 먹고 놀다 온다고 했지.
근데 ㅅㅁ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자나?’
라고 생각하고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어.
이 방 저 방 다 뒤져보다가 안방 화장실을
열어봐도 없길래 거실 복도로 천천히 걸어 나왔어.
“아 이 자식 어디 간 거야, 말도 없이...
아무리 자기 집이라지만 손님을 혼자 두고.”
그러면서 거실로 걸어 나오던 중,
부엌 식탁 위에 놓인 물컵을 보고
정신이 아찔해졌어.
갑자기 머릿속에서
‘형, 나 친구 좀 만나고 올게’
라는 말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어.
그러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어.
“아... 씨 X... 뭔데...”
복도에서 멍하니 서 있던 난,
안방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난 어디서든 문을 꽉 맞물리게 닫는
버릇이 있어서, 누가 일부러 열지 않으면
바람에 열릴 일이 없거든.
그때 본능적으로 느꼈어.
‘와, 나... X 됐다...’
라고 말이야.
혹시 물에 젖은 발소리 아는지?
찰박찰박... 찰박찰박...
난 복도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멍하니 서 있었어.
고개를 들었을 때,
현관 유리에는 내 모습 뒤에 무언가가 비쳐 있었어.
난 귀신같은 건 전혀 믿지 않았고 무서움도
잘 타지 않는 편이었어.
그런데 그때는 정말...
내 키가 170 조금 넘었는데,
내 뒤에 비친 형체는 족히 2미터는 돼 보였어.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는데,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사지가 축 늘어져 있는
검붉은 형체...
난 넋이 나가서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아,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미치겠다...’
라며 생각했어.
나 뭐 이상한 거 먹은 것도 없고,
컴퓨터 많이 해서 환각이 보이나?
하고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그때는 한참을 고개 숙이고 서 있었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형체는 여전히 내 뒤에 있었어.
‘그래, 도망치자. 귀신? 조까라 그래.
순간이동할 거야 뭐야. 어차피 날 못 따라올 거야.’
속으로 셋을 세고 뛰자고 마음먹었어.
그 짧은 순간에 뛰어서 문 열고 도망치는 걸 수없이
머릿속으로 연습했지.
‘하나...’
‘둘...’
‘셋!’
그리고 발을 내딛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뒤에서
‘두두두두두둑!!’
발소리가 들렸거든.
뒤에서 나를 쫓아오는 그 소리가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
현관을 박차고 나가 계단을 난간 잡고 반층씩
뛰어내리며 내려왔어.
그러면서 생각나는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며 내려왔어.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또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그때 최고 인기곡이었는데,
무섭고 놀래서 눈물도 안 났어.
정신 차렸을 때 7층까지 와 있었고,
발소리가 멈췄길래 더 빨리 계단을 내려갔어.
그때 발톱이 찍혀서 뒤집어진 줄도 몰랐지.
그렇게 아파트 벤치에서 한참을 맨발로
애들이 오기를 기다렸어.
얼마 후 애들이 왔고,
내가 겪은 일을 얘기했어.
애들은 무섭다고 울었고, 형 누나들은
“야, 너 미쳤냐? 왜 애들 놀라게 해?”
라며 타박했어. 그때 말했지,
“아 진짜 그럼 올라가 봐.”
솔직히 나도 그 상황이 환상이었길 바랐어.
다 같이 현관문을 열고 거실 복도에 들어섰을 때,
모두 얼어붙고 말았어.
300~320mm쯤 되는 때가 묻은 발자국...
걸음 폭은 1.5미터 이상 돼 보였어.
도저히 사람이 남긴 발자국 같지는 않았어.
난 남자지만 발 사이즈가 245mm거든.
그 집 아이들은 멍한 표정이었고,
나도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와 씨 X 나 꿈꾼 거 아니네, 진짜네...’
하는 생각이 더 들었어.
귀신이 붙은 건가 무섭기도 했고.
그날 이후, 나랑 동생은 바로 친척 집으로 옮겨갔고,
그 집 아이들도 부모님이 오셔서 얘기를
듣고 이사를 가게 됐어.
지금도 이 일을 떠올리면 닭살이 돋아.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믿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만,
2008년 8월 대구 수성구 M아파트에서
실제로 나랑 12명의 사람들이
겪은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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