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생 때의 일입니다.
한 7년쯤 전 일인 것 같네요.
저는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는 넓은 부지에 중앙에 호수가 있었고,
주변에 산들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건물도 많았어요.
저는 그 호수에서 가끔 낚시를 하곤 했는데,
붕어를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친구들이 멀리서 올라온 날이었어요.
친구 한 명과 같이 살았는데,
원룸에 살았습니다.
그 원룸 지하에 PC방도 있었고요.
(당시 저는 ‘포트리스’라는 게임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족발, 치킨, 소주 등
다양한 안주를 놓고 미친 듯이 술을 마셨습니다.
함께 살던 친구의 애인까지 와서 총 7명이서
신나게 마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친구가 눈치를 줬고,
우리는 다섯 명이 자리를 피해 학교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학교를 오르는데,
어둠 속에서 무서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놀이를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경비 아저씨를 피해서 술래잡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즉, 경비실에 돌을 던지고 도망가기로 한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 같지만,
그때는 철없던 시절이라 이런 장난을
자주 쳤습니다.
술까지 얼큰하게 들어갔으니 무엇이
두려웠겠습니까?
정말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경비 아저씨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소름이 돋습니다.
어쨌든 도망치던 중에 저는 호수 앞에서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에 발목을 조금 다쳤고,
그래서 혼자 호숫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저를 무의식적으로 공포에 떨게
했었나 봅니다.
"어, 지현아 나야."
"자기, 안 자고 뭐 해? 이 시간에..."
"나 장난치다가 호수에서 넘어졌어. 다리 다쳤어, 아파."
"친구들한테 빨리 연락해 봐."
"응... 어라? 앞에 뭐가 지나간다."
"뭔데?"
"잠깐만, 잘 안 보여. 내가 술에 취했나 봐.
호수 맞은편에 어떤 여자가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산에 올라가."
"미쳤어, 장난치지 마."
"진짜로. 보이긴 하는데,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봐."
그때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얼어붙더군요.
"너 혹시 바지 만져봐. 차갑니?"
"아닌데. 왜?"
"혹시 물에 발 담갔어?"
"아닌데. 왜 그래? 왜 진지하게 무섭게 그래..."
"아냐. 별거 아니야. 너도 무서운 거 있냐? ㅎ"
"어. 나도 무서운 거 있어."
"뭔데?"
"자기? ㅋ"
그렇게 우리는 웃으면서 한참을 수다를 떨었습니다.
나중에 여자친구가 말하기를,
혹시 제가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에 저는 친구들이 온 것을 발견하고,
"어. 지현아, 저기 친구들 왔어."
"잘 됐네. 얼른 같이 가."
"응."
친구들을 크게 부르며 전화기를 들고
외친 게 문제였지만,
여자친구가 시끄럽다고 뭐라 하더라고요.
근데 말입니다...
친구들이 저를 흘깃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말이죠.
여자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너 진짜 물에 빠진 적 없지?
진짜지?
혹시 친구들이 빠지거나 그런 거 아니지?
친구들에게 전화해 볼게.
잠시 너는 끊어봐."
그 후 여자친구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 여섯 명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여자친구는 불안하고 무섭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때 위쪽에서 친구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빈아... 유빈아..."
그런데 여자친구가 말하길,
"대답하지 마. 이상해. 대답하지 마."
그래서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저를 보며 막 화를
내며 욕을 하더군요.
'너 찾는다고 이 학교를 다 뒤졌다고…
왜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냐고...'
그때 여자친구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더군요.
안심이 안 된다고...
저는 친구들과 통화하고 나서 안심이
된 것 같아 내려가려 했지만,
발목이 너무 부어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덩치 큰 친구가 저를 부축해 주었고,
내려가려는데 앞에서 불빛이 엄청
크게 비치면서
'너희 거기서'
소리가 들려 부랴부랴 내려갔습니다.
슬슬 날이 밝아왔습니다.
근데 친구들이 갑자기
'너 잠시 겜방에 가 있어,
뭐 좀 찾아올게'하며
피시방까지 데려다줘서 저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여자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쯤...
"어?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너 도대체 어디야?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는 거야?"
"뭔 소리야? 너 안 자고 뭐 하고 있어?"
라고 물어봤더니 여자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친구한테 전화하고 바로 너한테 했는데,
그때부터 안 받더라..."
순간 소름이 쫙...
그럼 난 누구랑 통화한 거고...
그러고 있는데 그때,
PC방 문이 덜컥 열리면서
"유빈이 이 자식아..."
하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들어오는 친구들.
왜 저러지 싶어서 날 부축해 준
친구한테 말했어요.
"아... 아... 아파. 세게 당기지 마."
그러자 친구가 물었죠.
"어디가 아픈데?"
"다리 삐었잖아. 그래서 네가 여기까지
부축해 줬잖아."
그러자 친구가 말하더군요.
"내가 언제? 너 찾느라 우리 다 밤샜어.
애들 차 타고 난리 나고, 경비 아저씨들까지
다 깨워서 학교 전부 뒤졌다고."
내려올 때 학교에 불이 환히 켜져
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그럼 난 누구한테 업혀온 거고,
도대체 뭘 보고 도망 다닌 거야?
친구들이 말하더군요.
화장실 앞에서 너를 봤는데,
우리가 가니까 산으로 막 도망가더라...
말이 안 되잖아요.
다리 아파 죽겠는데 도망을 가게.
너무 황당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친구가 담배 사주지 않았냐"
고 물었더니,
아르바이트생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친구들 표정이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듯해서
친구들과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가 새벽 6시쯤... 서로 상황을 맞춰보니,
난 친구들 보고 도망 다닌 거고 친구들은
날 찾아다닌 거였죠.
'이거 예삿일 아니다, 집에 전화하자'
고 하더군요.
친구가 내 집에 전화를 걸었고,
난 그만하라고 했지만 신호가 가자마자
어머니가 받으셨어요.
친구가 한마디 했죠.
"어머니, 좀 올라오셔야겠어요."
더 놀라운 건 우리 어머니예요.
집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데도 이유
묻지도 않고 바로 올라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뭔 일이 있구나 하고요.
어머니, 아버지가 오시고는 집에 가자고 하셨고,
내려오는 길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랑 어머니가 나와 똑같은 꿈을
꾸셨다고 해요.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칼 든 여자애한테
쫓기고 있더라는 점이죠.
두 분이 동시에 깨어서 서로 놀라고 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친구의 전화가 와서 바로
내려오신 거랍니다.
그 뒤로 난 정신과도 가고,
성당, 교회, 상담실을 다 다녔어요.
모두 정신 차리고 살라며 술 많이 마셔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귀신이랑 얽히면 오래 못
산다고 여기저기 다니셨어요.
결국 친할머니께서 귀신 잡는 분이
계시다고 하셔서 전라도까지 갔어요.
촌구석까지 찾아갔는데 정말 연로하신 할머니,
올해 아흔을 바라보신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날 보자마자
"어이구 어이구"
하시더라고요.
나, 엄마, 아빠, 동생, 여자친구 이렇게
여섯 명이 있었죠.
할머니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 보자고 하셔서,
하루 지나 마을회관에서 무언가를 준비하셨어요.
사과 같은 것을 올리고 절을 했죠.
어이없더라고요.
저런 거 안 믿거든요.
짜증 나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할머니가
걸걸한 목소리로
"창성아"
하시는 거예요.
못 들은 척했더니 다시
"창성아."
"아놔, 엄마, 이런 거 하지 말자. 뭐 하는 거야..."
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다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 이름은 원래 내 이름이었는데
어릴 때 이름을 바꿔야만 해서 재판까지
하고 바꾼 이름이거든요.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시지 싶었죠.
속으로 뭐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창성아, 나 모르겠어? 인마."
하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널 어떻게 알아요?"
"나야, jjj야."
jjj는 그 친구의 이니셜이에요.
순간 욱해서 어른들 앞에서 욕을 퍼부었죠.
"이씨X 왜 죽은 애 이름은 꺼내고 이러는 거야."
그러자 할머니가
"야, 실망이야. 내 목소리 벌써 잊은 거야?"
하시면서 다가오시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걸어오시는데,
그 자세며 눈빛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나죠.
귀에 속삭이듯
"창성아, 나 jjj야. 못 믿는 거야?"
하며 아무도 모를 우리 이야기를 하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본드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 났었어요.
나는 진술서에도 그 얘긴 안 썼죠.
그 친구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20여 미터
날아가서 현장에서 즉사했어요.
그 이후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이름까지 바꿨는데...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 내 몸에 소름이 돋았죠.
귓속말로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소름 끼쳤어요.
그리고 다시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봐서 너무 좋았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이야기를 끝내시고 할머니가 좁쌀을
바닥에 까시더니 나보고 절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신이 나간 듯 절했죠.
그러자 좁쌀 위로 작은 새 발자국이 천천히
찍혀나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가족 모두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보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셨죠.
"그날이 네가 죽을 날이었어.
그런데 네 친구가 기일에 하루 내려올 수 있는데,
그날 안 오고 너 때문에 일찍 왔었어.
너를 업고 다닌 건 네 친구야.
그리고 너를 따라다녔던 것은 너를 해치려는
귀신들이었지. 네 친구 덕에 살은 거야."
그 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어요.
그 뒤에 친구 어머니를 찾아뵙고,
친구를 떠나보냈던 강에 백화를 뿌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내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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