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가위눌림.
그 깊이가 깊든 얕든,
어쩌면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채 가위에
눌려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심장 부근에 무언가 무게감을 주는 것(손, 팔 등)이
올려져 있다면 가위눌림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제가 깍지 낀 손을 가슴 위에 두고 잔 탓에
가위에 자주 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로 제 무의식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깨달을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정말로 피곤했습니다.
팔이 축 늘어질 정도로요.
찌는 듯한 여름 속에 약간의 오한까지
느껴져 몸살이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그래서 일찍 잠자리에 들 계획이었습니다.
방 안의 불을 끄고 누운 후,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습니다.
그런데 방 안은 마치 영하권으로 내려간 듯
한기가 가득했습니다.
‘내가 많이 아픈 걸까? 왜 이러지…’
가늘게 숨을 내뱉어보았습니다.
차가운 달빛 사이로 뿌연 입김이 보이더군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이상한 일을 겪으면 본능적으로
불을 켜서 확인하려 합니다.
저 역시 형광등을 켜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침대에 달라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온 방안을 눈알만 굴려 훑어보았습니다.
차례대로 방 안의 벽면을 훑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구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방구석에 세워둔 옷걸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옷걸이였는데,
그 옆에 뭔가 옷걸이와 비슷한 크기로…
서 있었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눈을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에 소름이 돋으며 그곳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지 않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위에 자주 눌려봤기에 꿈이라는 건 인식했지만,
너무도 선명한 꿈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옷걸이 쪽을 바라보니,
그곳은 유난히 빛이 잘 들지 않는 부분이었고,
집중해서 봐야만 걸려 있는 옷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옷걸이 옆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꾸물꾸물 움직이는 검은 천 같은 것이 위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포심을 넘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검은 천이 갈라지면서 하얀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얼굴이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드러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저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가위에 눌려서라기보다는 제 몸을 스스로
제어할 능력을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눈조차 움직이지 못한 채 그곳을 응시하며
극도로 피하고 싶은 장면을 놓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검은 천처럼 보였던 그것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고개를 들자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 아니,
그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시간과
제 몸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마치
공존하는 듯했습니다.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너무도
선명한 붉은 입이었습니다.
무서우리만치 커다랗고 섬뜩한 빨간 입이었죠.
“큭큭… 크크…”
쇠가 갈리는 듯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를 똑바로 응시하는 초록색 눈…
인광이라고 하나요,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개의 눈처럼 그 초록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와 그 여자는 별개의 존재처럼 서로를
마치 TV를 통해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꿈인 걸 알아도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절실하게 떠오른 것은 어릴 적 들었던
주기도문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검은 옷을 입고,
어깨와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길디긴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만 내밀고 있던 그 여자.
갑자기 빠른 속도로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섭도록 커다란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과는 다른,
끊어질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졌습니다.
거의 울부짖으며 주기도문을 외는 제 앞에서,
갑자기 삐걱대던 고개를 멈추고 빠른 속도로
제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보폭은 짧은데 무섭도록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더군요.
달빛 아래,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인지
바지인지 모를 그 아래로 파랗게 빛나는
발이 오가며 다가오는 그 광경…
순식간에 제 머리맡에 와서는 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인광이 빛나는 초록 눈동자가 아래로 내리깐 채,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눈을 감지도 못하고
눈물에 범벅이 되어 주기도문을
외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 여자의 차가운 입김을 느끼며,
시뻘건 입술 사이로 피처럼 붉고 긴 혀가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것을 보는 순간에 말이죠…
아마 기절하지 않았다면,
붉은 혀가 제 얼굴을 핥는 것을 느끼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굵게 내리는 빗소리에 한 시간을 자지도 못하고
눈을 뜬 것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꿈에서 깨어났다는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
괴이한 형상이 서 있던 자리로 다가갔습니다.
옷걸이 옆 벽면의 모서리였는데,
한여름 밤에 냉장고 안의 서리처럼 벽면에
하얀 얼음가루가 서려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니 얼음가루가 힘없이
부스러지며 곧 녹아내리더군요.
증명하기 힘든 어느 여름밤의 일입니다.
아직까지도 그 가위눌림의 공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옷걸이에 옷이 가득 걸려 있는 사이로 두 개의
초록빛이 번뜩였던 것이…
단지 저의 착각이었을까요?
그 해 여름,
저는 감기를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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