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이집트는 인신 공양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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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미신&역사

고대의 이집트는 인신 공양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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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관행은

제2중 간기(기원전 1650~1550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누비아의 케르마에도

발견되었지만,

고왕국 시대 이후 이집트에서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왕조 시대 이전과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3200~2688년)에는

장례 의식에서 노예들을 희생시켰던

고고학적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관련하여 제1왕조 통치자의 무덤을

둘러싼 많은 ‘부속 무덤’을 덮고 있는 지붕을,

수많은 왕족의 하인들이 사후에도

파라오를 모시기 위해 죽임을 당한 증거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러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체되었다는 점입니다.

 

 

이후에는 일을 하고 있는

하인들의 모습(벽화나 입체 모형 형태)과

망자를 대신해 농사일을 맡는

사브티 조각상이 이러한 관행을

광범위하게 대체했습니다.

 

물론 왕조 이전 시대 후기부터

봉헌된 물품이나 신전의 벽에는

왕이 적들의 머리를 잡고 처형하는 장면이

자주 그려져 있지만, 이러한 행위는

보통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표현된 것입니다.

 

관련하여 포로로 잡힌 외국인에 대한

묘사와는 달리, 실제 신전에서 죄수를

처형했다는 증거는 아멘호테프 2세의

재위 시절 문헌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카르낙의 아문 신전에서

시리아 왕자 7명을 처형했으며,

그중 6명의 시신은 아문 신전 벽에

펼쳐 놓았고 1명의 시신은 니파타의

성벽에 매달았습니다.

 

또한, 제4왕조 통치자 쿠푸와 마법사 제디의

이야기도 인간 제물과 관련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전설은 중왕국 시대에 기록된

웨스트카 파피루스

(현재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 소장)

남아 있으며, 이집트인들의 인간 제물에

대한 혐오감을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전설에서 쿠푸는 전형적인 압제자로서

죄인들을 참수한 후 제디에게 마력을

발휘해 목을 다시 붙이도록 요구하지만,

제디는 인간이 아닌 거위를 대상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문헌에 전해집니다.

 

또한, 피라미드 텍스트도 인간 제물과

관련된 자료로 참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인 찬가’라는 형식으로

‘왕이 신의 영혼을 삼킨다’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순전히 은유적인 표현인지

혹은 실제로 초기 인간 희생 행위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분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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