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친구 두 분과 함께 가을 산행을
즐기고 계셨다고 합니다.
마침 연휴였고 날씨도 좋아,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순조롭게 산을 오르고
계셨다고 하네요.
그런데 낮이 지나갈 무렵,
갑자기 날씨가 흐려졌습니다.
'아가씨의 마음과 산 날씨는 모른다'
는 말처럼,
순식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칭 베테랑이라던 아버지와 동료분들은 날이
흐릴 때부터 이미 재킷을 꺼내 입으셔서 큰 문제는
없으셨다고 합니다.
계속 일정한 페이스로 걷고 계셨는데,
숙박 예정인 오두막까지는 앞으로 약 2시간 정도
남아있었답니다.
그때 갑자기 동료분 중 한 분, 히구치 씨가
"추워..."
라고 중얼거리며 쭈그려 앉으셨다고 합니다.
왜 그러시냐며 말을 걸고 이마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계셨다고 하네요.
큰일이다 싶어 아버지와 다른 동료분이 양쪽에서
부축하며 간신히 오두막까지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하니,
정말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은 연달아 일어난다고 하죠.
오두막은 이미 연휴로 인해 산행을 떠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도에도 사람이 꽉 차 있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너무 붐비는 상황에 돌아가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 친구만이라도 좀 재워주세요."
아버지는 오두막 관리인에게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관리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미안합니다.
건강한 분이라면 어떻게든 묵으실 수 있는 곳을
찾아드리겠지만, 이 정도로 아프신 분이라면..."
이라며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괜찮습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라고 다시 간청하셨고,
결국 관리인도 마지못해 승낙하셨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안내받은 방을 보고,
아버지는 적잖이 놀라셨다고 합니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방이었는데, 그곳에는 아버지 일행 넷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와 있던 한 사람은 방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누워 계셨습니다.
다만, 곰팡이 냄새와는 다른 알 수 없는 냄새가
방 안에 자욱했다고 합니다.
왜 이 방만 비워져 있었는지 의아하셨지만,
우선 히구치 씨를 간호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셨답니다.
코펠로 물을 끓여 따뜻한 죽을 만들어 드리고,
아버지와 다른 동료분도 간단히 식사를 하신 후
저녁 7시 무렵, 히구치 씨를 가운데 두고 침낭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이 오질 않더랍니다.
산행으로 충분히 지쳐서 금방 잠들어야 했는데,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동료 한 분이 아버지께 슬며시 말을 거셨습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응. 잠이 안 와. 너도 그래?"
"네, 그런데 이 방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지? 다른 방은 다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저기... 화장실 다녀오다가 게시판을 봤는데요."
그 순간, 아버지는 등골이 오싹하셨다고 합니다.
"행방불명 8명, 사망 1명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런 산속 오두막에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 병원 영안실
역할을 하는 시체 안치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방 한켠에서 같이 누워 계시던 먼저 온 손님의 정체가
불현듯 떠오르셨습니다.
"이제 그냥 자자."
아버지는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질끈
감으셨다고 합니다.
다음 날, 먼저 와 있던 손님은 다른 사람들이 하산하거나
등정하느라 오두막을 떠난 후, 구조대 헬기로
운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구치 씨도 다행히 건강을 되찾으셔서,
오두막 관리인이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히구치 씨 말씀으로는 그날 밤 열로 고생하시던 중
누군가 차가운 손으로 계속 이마를 어루만져 주었다고
하더랍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은 없잖아요.
그 손이 없었으면 저도 아마 헬기 타고 내려왔을지도
몰라요."
히구치 씨는 껄껄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