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에 가려진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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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전쟁

유영철에 가려진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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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규

1969년 3월 1일 ~ 2009년 11월 22일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20여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14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입니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후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했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고 

아버지의 학대와 친구들과 선배들의 따돌림으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의지하던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군 복무 중에도 동료와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하며 기수열외(군내 따돌림)를 당하며 

군 전역 이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남규의 첫 살인은 2004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남자 초등학생 2명을 납치해 성폭행 뒤 

죽인 것이 첫 살인의 시작이었습니다.

 

남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것은 

어렸을 때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후 경기도와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며 

밤에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해 살해하거나 뒤 따라가 

살해 후 방화를 저질렀습니다.

 

정남규가 살해한 사람은 14명이지만 

실제로 살해를 시도한 사람은 34명에 

이르렀고 20명을 살해한 유영철보다 

두배나 많은 범죄시도로 만약 피해자가 

모두 죽었다면 역대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됐을 것입니다.

 

정남규는 절도를 위해 신길동 다세대 주택에 

침입해 방안을 뒤졌지만 만 원짜리 상품권 

한 장밖에 찾지 못해 화가 나 방 안에서 

자고 있던 20대 청년을 둔기로 살해하려다 

피해자의 극렬한 저항과 옆방에서 자고 있던 

피해자 아버지가 합류하려 격투 끝에 

붙잡히게 됩니다.

 

정남규가 검거된 후 조사 중 했던 말들입니다.

 

"분하다 1000명을 죽여야 하는데 

잡힌 게 억울하다"

 

"기분 나쁘다. 내가 죽인 것을 유영철이 

자기가 죽인 것처럼 떠들어 됐다.

내가 유영철보다 한수 위다"

 

정남규는 살인을 하기 위해 하루에 

10km씩 마라톤을 하고 수십 개의 

모자와 신발을 준비하여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신발의 

밑창을 전부 뜯어버렸으며 

과학수사의 대한 공부와 자신의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며 

살인의 우선순위까지 정해두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1순위 젊은 여성

2순위 여자 아이

3순위 남자아이

4순위 30~50대 여성

 

정남규는 검거 후 사건 현장 검증에서 

피해자의 가족들이 찾아와 울부짖으면 

피해자들에게 발길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취재진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시도하려 할 때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짓는 등 

범죄의 대한 반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후 구치소에서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목을 메 자살을 하는데 더 이상 살인을 

할 수 없으니 스스로 죽인 것이라 사람들은 

말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자만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하던 정남규는 죽기 전 

낙서 한 노트에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등의 낙서로 보아 사형의 대한 압박감에 

비겁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 학대 폭력 왕따 성폭행 등 

불행한 인생을 보낸 정남규지만 쾌락을 위해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범은 

그 어떤 동정이나 용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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